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미뤄오던 블로그를 시작한다. 원체 글을 쓰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얼마나 오래 갈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급격히 짧아지는 터라 이제부터라도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이 글이 첫 포스트인 만큼 나에 대한 얘기를 써보려 한다.

나는 좋은 집안에서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행운아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할 경험도 어릴 때부터 누렸다. 그래서 그런가. 중학교 때부터 내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이 행운을 남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어린 애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지만 그땐 진짜로 그랬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꿈을 가지기보단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건축가가 되어서 못사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집을 지어주고 싶었고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의사가 되어서 아프리카로 의료 선교도 떠나고도 싶었다. 지금의 내가 봐도 참 기특하다(흐뭇).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학생이 나에 대해 진중히 생각해 볼 시간이 있나. 결국은 그냥 남들처럼 성적 맞춰 카이스트에 갔다.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면서 남들보다 1년 앞선다는 지나친 여유와 모두 대학원을 가는 분위기에 휩쓸려 4학년이 될 때까지 아무런 진로 고민 없이 대학생활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나도 아무렇게나 흘러만 갔다. 돌이켜 보면 ‘좋은’ 대학 생활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여러 가지 학내 활동도 많이 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원 없이 다녔지만, 대학은 그것만 하라고 존재하는 장소는 아니지 않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초년생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3학년 가을학기에 휴학하고 남미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당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끝도 없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다 까먹었다. 그래도 여행하면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는 것은 기억한다. 남미를 여행한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정말 시간이 넘쳐 흐른다. 버스를 타면 12시간은 기본이고 42시간 타 본 적도 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누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21살에 사춘기가 왔나 보다. 그러면서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나는 남에게 봉사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복학하면 다시 시작해 볼까? 지금 도전 안 하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야. 의식이 흐름대로 논리가 전개되었다. 여기선 단순히 몇 줄로 당시의 생각을 표현했지만, 남미에서 나의 고민은 지루할 정도로 길었고 나름대로 처절했다.

그래서 복학하고 의전원을 준비했다. 영어부터 MEET까지 준비할 게 많았지만, 학업과 병행하며 차근차근히 해나갔다. 방학 때 서울에서 텝스 학원도 다니고 밋단기에서 인강도 들었다. 3년간 수업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모두 담겨 있는 깃허브 계정도 지웠다. 내 전공인 전산과에 대한 것은 모두 잊고 오로지 의전원 입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후회 없이 공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물 지식도 차근차근 쌓였고 텝스도 예상치 못하게 고득점이 나오면서 내 꿈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전원 면접을 1주일 앞두고 포기했다. 그 이유는 여기서 풀어내긴 힘들다. 고민이 실타래처럼 얽혀 지금의 내 필력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아마 이 부분은 시간이 흐르고 내가 더 성숙해진 후에 채워놓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그만뒀다. 시험도 안 보고 도중에 포기했다. 그러면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 11시에 잠자리에 누우면 해가 뜰 때쯤에야 잠이 들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내가 뭐 했던 거지. 앞으로는 뭐 먹고 살아야 할까. 내 어릴 적 꿈은 이게 아니었나. 지난 5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걱정을 하다 보면 대여섯 시간이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는 남아있었다. 나는 내 전공이 좋았다. 비록 중간에 일탈을 경험하긴 했지만 한 번도 전산 공부가 미웠던 적은 없었다. 항상 나에게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을 주는 학문이었다. 내가 의전원 준비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도 전산과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주가 흘렀을까. 새로운 교수님이 여름방학 때부터 우리학교에 부임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CS 쪽에서 꽤 유명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라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교수님이셨다. 연구 주제도 흥미로웠고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친구도 해보라고 추천해줬다. 교수님의 인턴 구인 글을 보니 웹 프로그래밍 실력이 필요했다. 나는 웹 삼형제 HTML, CSS, JS는 어느 정도 알았지만 실제로 웹 서비스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원하기 전 2주 동안 빡세게 공부했다. JS basic부터 React까지 넓고 넓은 JS 생태계를 마음껏 헤엄쳐 다녔다. 근데 웬걸. 너무 재밌었다. 파도파도 나오는 끝없는 배울거리. 내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경험했던 성장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골프를 책으로만 배우다가 실제로 필드에 나가 머리 올리는 기분이랄까. C로 OS나 TCP Protocol도 구현해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내가 스스로 배울거리를 찾아가면서 배우니 재미가 2배. 배움도 2배였다. 그냥 한 마디로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많이 방황한 만큼 지금도 꾸준히 내 배움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연구실 인턴도 지난 학기에 마쳤고 얼마 전 구글 뉴스랩도 끝났다. 졸업까지도 1학기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개발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실력 있는 개발자로 살려면 끊임없이 배우면서 살아야겠지만 그런 게 바로 인생 아니겠나.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란 항상 두근대기 마련이다. 마치 블로그를 새로 시작할 때의 설레임처럼. 데헷><

블로그에는 일상적인 글도 쓰겠지만 주로 개발 관련 글을 쓰려고 한다. 휴학도 했으니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포스트 올릴 계획이다.

쭉 쓰다 보니 굉장히 오글거리고 지나치게 요약된 중구난방한 글이 되었는데 뭐 어쩔 수 없다. 나는 글을 못 쓰니까!